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병리과의 엄민섭 교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촉탁법의관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법의관의 모습은 매우 극적이고 신비로운 경우가 많은데요.
실제로 마주한 엄민섭 교수의 모습에서는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학자의 진지함과 경건함이 돋보였습니다.
안녕하세요. 법의관이란 직업에 대해 궁금해하는 독자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계기로 법의관의 길을 걷게 되셨는지, 현재 어떠한 일을 하고 계시는지 여쭙습니다.
저는 20년 전 원주기독병원(現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서 병리과 전공의를 마치고 공중보건의사가 되었습니다. 사실 남들처럼 한적한 시골에서 보건지소장으로 3년간의 공중보건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제 의지와 관계없이 병리과라는 전공으로 인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의 공중보건의사로 업무를 시작하였습니다.
첫 2년은 전라남도 장성군에 위치하던 가도 가도 끝이 없고 찾기가 힘든 국과수 서부분소(현재는 광주광역시 광주연구소로 이전)에서 근무하였습니다. 3년 차는 그 당시 새롭게 강원도 원주시 문막에 개소한 국과수 동부분소(현재는 본원으로 통합)에서 마지막 1년을 근무하였습니다. 국과수에서 3년간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하면서 약 1,500여 건의 법의부검에 참여하였고 약 300건의 부검을 직접 집도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국과수에서의 시간은 저에게는 새롭고 흥미롭고 또한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법의학의 매력을 모르다가 점점 빠져들게 되었고 그 기간은 법의학 공부와 실무에 최선을 다했던 것 같습니다. 국과수 공중보건의로서의 경험은 일반적인 병리과 의사가 접할 수 없는 매우 큰 경험이었고 또한 저의 인생에서는 현재까지도 큰 재산이 되었습니다. 공중보건의사를 마치고 바로 병원 병리과로 복귀하였고 현재까지 병리과 의사이자 대학교수로서 업무를 해오고 있습니다.
2013년 국과수 본원이 원주로 이전하였고 2016년 5월 충청북도 증평 할머니 살인사건이 발생한 이후 전국적인 부검 건수는 매우 증가하여 국과수에서 촉탁법의관을 저에게 제안해주셔서 그때부터 다시 법의부검 실무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매달 두 번 정도 국과수 본원에서 촉탁부검을 진행하고 매년 약 60건 정도의 부검을 집도하고 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 본관 및 법의학동
국과수 촉탁법의관 업무를 하면서 인상 깊거나 보람 있었던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사실 언론에서 이슈될만한 사건의 부검은 대부분 내부 법의관들이 부검을 진행하기 때문에 촉탁법의관은 주로 일반적인 변사사건의 부검을 맡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검을 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부검 결과를 예측하기 매우 어려우므로 종종 문제되는 사건을 맡게 됩니다.
최근에 가장 기억이 남는 사건은 2020년 4월 철원에서 고물 수집하는 60대 남성 뺑소니 사건이 있습니다. 혼자 가난하게 고생하시면서 살아가시고 주변 사람들 얘기로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고물을 수집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변사자가 방에서 홀로 부패가 많이 진행된 상태로 이웃 주민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부검 당시 담당 형사의 설명에 의하면 침입 흔적도 없고 일반적인 고독사로 추정된다는 설명을 듣고 부검을 시작하였는데, 부패로 많이 가려져 있기는 했어도 여러 외표 손상이 확인되었고 내부에는 척추뼈를 비롯한 많은 치명적인 골절도 확인되었습니다. 사건 정황과 변사자의 상태가 너무 차이가 컸습니다. 부검 후에 경찰들에게 추락과 같은 손상이 있다고 설명하였고 누군가 사망한 상태로 옮겼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후 경찰들의 조사에 의하면 새벽에 차량에 의해서 뺑소니 사고가 발생하였고 크게 다친 몸과 수레을 밀면서 집에 들어오는 장면이 주변 CCTV에서 모두 확인이 된 사건입니다. 사실 이 사건으로 법원에 소환되기도 하고 방송국의 인터뷰를 피해가느라 고생도 한 것 같습니다. 담당 검사와 경찰들과 여러 번 의논하고 하나하나 부패 시신에서 사망을 실마리를 찾아 나가게 되어 매우 보람 있었고 기억에도 많이 남는 것 같습니다.
법의관은 사고나 범죄에 관련된 죽음을 조사하는 직업입니다. 법의관으로 활동하면서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사망한 사람의 사인을 찾는 것은 상황에 따라서 매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사망한 후 바로 발견되어 부검이 진행된다면 사소한 상처까지 모두 확인이 가능하고 내부 장기에서도 사망과 연관된 소견을 찾을 수 있어서 대부분 사인을 제시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시신이 추락이나 교통사고 등 심각한 손상을 받았으면 작은 손상은 심한 손상과 구분하여 해석하기가 매우 어렵고 또한 시신이 심하게 부패되거나 화재 등에 의해 심하게 소훼되면 미세한 손상이나 질병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빈번합니다. 이런 사건의 부검을 맡을 때마다 한 번 더 최선을 다해서 사망의 원인을 찾아보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집도하지만, 여러 중요한 소견들이 손상이나 부패에 숨겨져 있을 가능성을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부검은 시행했지만, 부검 감정서에 사인을 모르겠다고 쓸 수밖에 없을 때는 많이 안타깝습니다. 뭔가 사망과 연관된 손상이 있거나 사망에 이를만한 질병이 있었을 텐데 저의 능력 부족으로 사인을 찾아내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자책감도 들고 돌아가신 변사자에게 죄송한 마음도 듭니다. 사람이 하는 일로서 의학적 한계는 있지만 그래도 한건 한건 경험할 때마다 새롭고 조금씩 저의 능력과 지식이 늘어간다는 생각은 하게 됩니다.
법의부검의 대상은 살아있는 환자와는 달리 말이 없고 남아 있는 신체에서 사망과 연관된 소견을 찾는 분야입니다. 기록과 사진을 남기기는 하지만 집도의의 소견만이 사망의 원인을 결정하는데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 부검 후에는 대부분 장례절차가 진행되므로 다시는 확인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기술적으로 빠른 시간 내 사인을 찾아내야 하므로 병원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료와는 다르다고 생각되고 집도의의 양심이 매우 중요한 분야라고 생각됩니다.
법의관 대부분이 병리과 의사이긴 하지만, 극히 일부 병리과 의사만이 법의학에 관여하고 있고 사망한 사람을 보는 업무인 만큼 인기가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망한 사람의 명확한 사인을 확인해 줄 수 있고 종종 숨겨질 수 있는 억울한 죽음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꼭 필요한 업무이며 공적인 업무에 기여할 수 있어서 보람된 업무라고 생각됩니다.
10여 년 전, 신문에서 신생아 중환자를 전공하셨던 교수님이 은퇴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내가 나중에 죽어서, 내가 치료한 그 아이를 다시 만나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게 항상 최선을 다했다.’ 저도 한건 한건 부검 집도를 할 때마다 그 교수님의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해서 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촉탁법의관으로 일할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시고 열악한 환경에서 항상 애써주시는 국과수 본원 법의학부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검안과 부검을 진행한 후 소견을 작성합니다. 집도의의 소견이 사망의 원인을 결정하는데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